쌉소리 일지

그렇지만 나는 지금 가라앉아야한다.

쟉트 2024. 6. 6. 22:43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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집 밖을 경계하느라 정작 내부 상태 점검을 소홀히 했다.
구더기 피었을, 내가 지키는 집의 내부를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.
문손잡이를 돌리기조차 나는 겁이 나는 것이다.
하지만 외부의 적은 이제 없고,
내가 지켜온 오두막에선 스산한 기운이 문 밑으로 축축히 흘러내린다.
외부의 적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,
지키는 집 밖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.
기분 좋은 보상을 꿈꿀 수도 있겠지.
빈 집에 돌아올 사람을 기다리며 말이다.
근데 이제 안다.
그 집에 돌아올 사람은 없다.
나는 빈 집이라 지켰는데,
그것이 빈 까닭은 내가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.
내부는 안봐도 유튜브 숏츠.
모든 게 엉망진창.
살아있는 건 벌거지들 뿐일거고.
기분 나쁜 곰팡내가 가득할 것이다.
어쩌면 집 중앙에 거대한 구멍이 나있을지도 모른다.
바닥이 보이지 않고 물인지 모를 액체로 가득찬 구덩이가.
적이 없는 시간에 나는 쉴 수도 있지만,
주인 없는 집을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.
그리고 그렇게 소중하게 지켜온 집이,
망가지는 것도 모른 채, 못 본체 한다면
내가 싸우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.
결국 나는 문손잡이를 돌려야 하고
알 수 없는 액상 속으로 침잠해야한다.
내가 지켜온 가치가 보잘 것 없단 것도 봐야하고
고쳐야할 게 얼마나 많은지도 파악해야한다.
그렇기 때문에 나는 가라앉아야한다.
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바닥으로.